"너무 졸려요. 평소에도 졸린데 어제는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최정에게 인사하자 그녀는 '구영탄(만화가 고행석의 캐릭터, 8~90년대 불청객시리즈로 유명한 만화주인공)의 눈'으로 이 말을 남기고 대국 2분 전까지 바둑TV 대기실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나 대국장으로 들어서며 초롱초롱한 '소녀의 눈'으로 바뀌더니, 자리에 앉아서는 눈빛이 더 가라앉아 '승부사'로 변신한다.

8월 20일 바둑TV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7기 지지옥션배 본선 14국에서 최정 3단은 228수 끝에 양상국 9단을 상대로 흑10.5집승을 거뒀다. 소녀 최정이 이긴 시니어기사는 서봉수와 양상국, 이제 2연승이다.

부드럽게 이겼다. 최정은 포석 과정에서 우변에 큰 집을 지었고, 좌변과 중앙에서도 오동통한 실리를 차지하자 흑의 필승지세가 되었다. 'EBS 바둑교실'의 친근한 선생님 양상국은 불리한 가운데도 품위있는 행마로 진흙탕 싸움은 피하며 우아하게 한 판을 내줬다.

국후 최정도 "초반에 집이 많아 싸움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조금 재미없는 내용이 되었다. 이렇게 크게 차이 나는 바둑은 아니었는데 끝내기에서 득을 크게 봤다. 같은 여류팀 언니들의 기대와 응원이 힘이 됐다. 다음 판에도 잘 해보겠다."는 소감과 함께

"여전히 충암바둑도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바둑판과 함께한다. 공부만 하는 건 아니고, 솔직히 고백하면 오전에는 졸고있는 시간도 많다."라고 근황을 전한다.

제15국은 26일(월) 오후 7시에 열린다. 다음 시니어 출전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박영찬 4단이 유력하다. 이 대국도 사이버오로에서 수순중계하며 아이폰, 아이패드와 안드로이드OS 기반 스마트폰에서 <오로바둑>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관전할 수 있다.

지지옥션배는 부동산경매정보업체인 (주)지지옥션이 후원하고 (재)한국기원과 (주)바둑TV가 공동주최한다. 만 45세 이상의 남성과 여성(연령제한 없음)이 참가하는 연승대항전으로 우승상금은 7,000만원. 3연승한 선수에게는 200만원의 연승상금을 주며 이후 1승당 100만원의 연승상금이 추가로 지급된다. 제한시간은 각자 10분에 초읽기 40초 3회.

○● 제7기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 출전 선수

[여류팀] : 박지은, 최정, 박소현, 권효진, 김혜림, 김수진 /탈락: 현미진, 조혜연, 김신영, 김나현, 김혜민, 윤지희

[시니어팀] 조훈현, 유창혁, 김일환, 박영찬 /탈락: 이관철, 정대상, 김동엽, 서능욱, 김종수, 최규병, 서봉수, 양상국

▲ '꿈꾸는 정이' 연승보다 잠이 더 좋다? 그래도 국후에는 "연승해서 행복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 흑을 잡은 최정의 첫 착점. 중국식포석을 펼쳤고, 우상귀와 우변으로 이어지는 큰 집을 지어 승세를 굳혔다.

▲ 23년 간 'EBS 바둑교실' 프로그램을 통해 바둑보급에 힘썼던 양상국 9단. 매년 2회 진행하는 별도의 바둑 특강도 제34기를 맞아 9월 3일부터 16주 과정에 들어간다. 대상은 선착순 15명이며 매주 화요일 양재종합시장 빌딩 301호에서 진행된다. 전화문의 011-9933-8899 .

▲ 10집 반의 대차였다. 계가를 마치고 한참 반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지난 수순을 되짚어보던 양상국 9단은 한참이 지나서 밝은 목소리로 복기를 시작했다. 이후 승자 최정의 인터뷰 시간에는 대기실 바둑판에 첫 수부터 다시 놓아보며 최정을 기다렸다.

▲ 반상 앞에서 깊어지는 눈빛. 소녀 승부사 '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