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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속력행마는 아직도 즐겁다
 

최정 초단의 8연승으로 싱겁게만 끝날 것 같았던 지지옥션배가 조훈현 9단의 8연승 대반격으로 벼랑 끝 승부까지 오게 됐다.

1승부터 3승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던 탓에 5연승 이상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었는데, 역시 황제의 속력행마는 세월의 무게에 쉽게 내려앉는 그런 싸구려 엔진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내심 마지막까지 가고 싶을 것이다.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박지은 9단에게 모두 패한 만큼 어떻게든 설욕전을 치르고자 할 것이다.

만약 조훈현 9단의 원맨쇼로 시니어팀이 우승한다면 우린 어떤 말을 토해내야 할까? 황제의 노익장? 시니어팀의 반성? 혹은 여류팀의 반성?

아무튼 결과여하를 떠나서 58세의 속력행마를 계속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의미인 것 같다. 젊은 날의 속력행마와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가미된 그런 느낌, 그가 아직도 승부의 현장에서 한참 어린 후배들을 호령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지 않은가.



제5기 지지옥션배 19국
●조훈현 9단 ○조혜연 9단
장소: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
날짜: 2011년 9월 5일
결과: 219수 흑불계승



장면1(교환은 무슨 의미?)


조훈현 9단의 속력행마를 견제하기 위해 조혜연 9단이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백4와 흑5의 교환은 무슨 의미일까? 언뜻 좌하귀와 연관된 교환으로 보이지만 실전은 진흙탕 싸움의 시발점으로 작용했다.

실전진행1(어려운 싸움을 자초하다)


조혜연 9단의 선택은 백1의 기대기 붙임이었다. 하지만 이 수는 그다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백3으로 연타했으나 이어 나온 흑4의 빠짐이 백의 응수를 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수순을 보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백5로 강하게 막아갔으나 흑6의 끊음이 통렬하게 작용하면서 이렇다 할 응수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백13의 축머리 공작이 있어 백15로 나가는 반발이 성립됐지만 먼저 손해보고 들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참고도1(축머리 활용)


흑1로 끊자고 했을 때 백은 간명책을 택하는 것이 좋았다. 백2로 붙였으면 어땠을까?

흑3으로 젖힌다면 곧장 백4로 맞끊는 수가 성립한다. 보통 흑9로 몰아 백 한 점을 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백△가 축머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전진행2(흑, 쾌조의 흐름)


계속되는 실전진행이다. 흑은 먼저 1로 뻗어 백의 동태를 살핀다. 흑3의 이단젖힘과 흑11의 붙임, 흑21까지는 조훈현 9단만의 훌륭한 임기응변이자 손바람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수순 중 초읽기에 몰려 시간 연장책으로 둔 백12의 젖힘에 흑13으로 반발한 것도 좋은 수다. 황급히 백14로 막았지만 흑15의 잽이 따끔하다. 결국 27의 큰자리가 흑에게 돌아가면서 초반은 확실한 흑 우세의 국면이 된다.

참고도2(그냥 지키는 것이 좋았다)


실전진행2 백18, 20은 괜한 손찌검이었다. 백24로 다시 돌아올 요량이었다면 그냥 백1로 쌍립을 서는 것이 훨씬 나았다.

이렇게 자기의 약점을 지키고 흑에게 다음 공을 넘긴다면 되레 흑의 응수가 상당히 제한된다.

참고도3(탄력 있는 모양)


실전진행2 백24도 뭔가 다른 수를 찾아봤어야 한다.

A의 약점이 신경 쓰일지 모르나 상변은 백1, 3의 교환이 선수로 들어 자체적으로 살아있는 모양이다. 흑4로 반발한다면 백5로 붙여 귀를 잡아버리는 수가 성립된다.

실전진행3(제자리걸음)


흑2의 달아남에 백1로 가른 것은 당연한 일착이고 백3, 5의 지킴, 백7의 지킴은 중앙 공격을 염두에 두겠다는 의사표시다. 하지만 백15의 씌워간 수는 어땠을까?

중앙과 하변을 내버려두고 그곳을 둘 이유가 전혀 없었다. 왠지 제자리걸음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참고도4(엷음을 추궁한다)


흑1에 백2, 4까지 밀어놓고 백6으로 몰아 흑의 엷음을 추궁하는 것이 그나마 현명한 선택이었다. 실전진행3 백15의 씌움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다.

중앙을 조금씩 압박해간다면 하변 흑진영은 자연스레 축소될 것이다. 이렇게 바짝 따라붙는 모양새를 취했다면 불리하나마 긴 바둑이 되지 않았을까.

장면2(결정타가 된 활용 한 방)


이 바둑의 마지막 승부처가 된 장면이다. 흑1, 3의 활용에 백4로 반발했고 다음 흑7의 찌름에 백이 과하게 반응하면서 바둑은 순식간에 끝이 나 버렸다.

실전진행4(무리한 버팀)


실전은 백1의 버팀수가 두어졌다. 좌상귀 시한폭탄을 놓고 이렇게까지 버틴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무리한 버팀이다. 이하 29까지 백이 끔찍하게 당하면서 이 바둑은 더 이상 해볼 곳이 없어진다.

참고도5(참았어야)


백은 중앙 두 점을 포기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중앙 백 두 점이 뜯겨나갔지만 흑도 좌상귀 실리 손해를 감수했기 때문에 백이 꼭 손해 본 결과라고 말할 수 없다.

참고도6(끝까지 버티려면)


이왕 버티기로 각오한 몸이라면 실전진행4 백13은 다음과 같이 백2로 끈덕지게 둘 필요가 있었다. 좌상귀 패와 상관없이 중앙을 크게 잡겠다고 덤벼들었다면 실전처럼 처참하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바둑은 흑이 잘 둔 것도 있겠지만 백이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는 것이 가장 큰 패인이라 봐야겠다.

[글 ㅣ 김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