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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혁, 시니어의 이름으로!
지지옥선배 21, 22국 집중조명
 

▲ 시니어팀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유창혁 9단.
지지옥션배에 첫 출전한 유창혁 9단의 모습은 아직까지 생소하기만하다. 만45세 이상 시니어 기사에게 출전권이 부여된다지만 유창혁이란 이름이 벌써 시니어의 반열에 합류할 정도가 됐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첫 출전에 마지막 주자라는 부담감을 턱하니 얹혀놓았지만 역시 과거의 명성은 헛되지 않았다.

권효진 5단과 루이나이웨이 9단을 손쉽게 제압하는 것을 보며 왜 그가 90년대 한국바둑의 당당한 주연이었는지 잘 알 것만 같다.

이제는 어느 팀이 우승하더라도 큰 의미부여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마지막까지 끌고 온 두 기사들의 선전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최정 초단의 8연승으로 여류팀 승리가 결정적일 것 같았지만, 이렇게 흐름을 반전시킨 조훈현, 유창혁 9단의 10연승 합작은 황혼의 멋진 발걸음이라 극찬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유창혁 9단의 2연승 승전보를 집중조명으로 다시 감상해보자.


제5기 지지옥션배 본선21국
●권효진 5단 ○유창혁 9단
장소: 바둑TV스튜디오
날짜: 2011년 9월 20일
결과: 186수 백불계승



장면1(웅크린 행마)


초반 포석이 한창인 장면이다. 흑1로 바짝 다가선 수와 곧장 백2로 갈라친 수는 쌍방 기세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사표시다. 그러나 흑5의 한 칸 뜀과 흑7의 붙임은 어땠을까?

좋게 말하면 피한방울 안 나오는 단단한 행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굉장히 경직된 행마라 말할 수 있다. 이어진 흑11의 붙임도 상대방의 반격을 고려하지 않은 때 이른 큰 실수였다.

참고도1(불필요한 교환)


백1로 뛰었을 때 흑은 2의 날일자 정도로 모양을 정비하는 것이 보통의 감각이다.

백3으로 전개한다면 흑4로 한 칸 뛰어 국면을 두텁게 운영할 수가 있다. A의 곳은 백이 둘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장면1 흑5, 7은 결국 불필요한 교환들이다.

참고도2(흑의 생각)


흑1의 붙임은 다음과 같은 수읽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통상 백2부터 흑7까지의 상용 수법을 그려볼 수가 있다.

하지만 바둑에서 일방적인 수읽기는 항상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다. 상대방의 반격도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전진행1(백의 급습)


붙이면 젖히라는 격언은 아무 때나 통용되지 않는다.

흑1의 붙임에 백2의 역습을 감행하니 다음 흑의 행마가 난처해졌다. 흑11로 넘어가긴 했지만 저위로 넘어가는 자세가 굴욕적이다.

참고도3(벌린 것보다 못하다)


실전진행1은 애초 흑은 우변을 두 칸 전개한 것보다 못한 그림이 됐다. 백의 반격을 고려하지 못한 흑A의 붙임이 얼마나 경솔한 선택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실전진행2(꽃놀이패)


백△로 막아간 것은 귀의 뒷맛을 노리고 백돌의 안위도 돌보는 일석이조의 자리다.

귀를 계속 받을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실전에선 손을 뺐는데, 백4부터 10까지 백의 꽃놀이패가 터지게 되자 흑이 더욱 암울해졌다. 패의 대가로 상변이 잠식당한다.

참고도4(백1은 작았다)


사실 팻감으로 쓴 백1은 작은 자리였다.

어차피 손해를 각오해야한다면 흑은 백1때 패를 해소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백3으로 두 점을 차단할 때 흑4로 젖히는 수가 좋아서 상변 백집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장면2(타개는 어떻게?)


흑은 이제 어떻게든 시빗거리를 찾아야만 되는 어려운 국면이 됐다. 흑1로 껴붙이고 나서 흑3으로 한 칸 뛴 수는 좌변 백과 상변 백돌을 노리겠단 흑의 승부수다.

그러자 백은 상변을 손빼고 백4로 한 점을 접수해 상변을 잡아보라고 한 술 더 뜬다. 흑5로 씌워도 이 백돌을 충분히 타개할 수가 있다는 말인데 과연 유창혁 9단이 준비한 타개책은 어떤 것이었을까?

실전진행3(끼우는 수가 있었다)


실전은 백1로 밀고 나서 3으로 끼우는 타개책을 선보인다. 흑10으로 이어 타협은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후속공격이 어려운 모습이다.

흑20으로 끊어서 다시 한 번 승부수를 띄워보나 백25로 뻗자 흑의 다음 수가 없는 모습이다. 종국이 가까워져간다.

참고도5(알기 쉬운 타개)


실전도 좋은 타개책이나 더 알기 쉬운 그림이 있었다. 그냥 백1로 밀고 나가는 수가 간명한 타개책이다.

흑의 포위망이 보기 좋게 무너진다. 흑이 3자리로 바로 막는 것은 백5다음 A의 끼움이 눈에 보인다. 그렇다고 참고도와 같이 흑2로 한발 늦추는 것은 백7의 끊음에 응수두절이다.

참고도6(타협)


흑10으로 잇지 않고 그냥 상변 백돌과 중앙을 바꿔치기하는 것이 현실적인 타협책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흑은 순순히 타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도7(다른 수단)


백은 선택권이 많았다. 실전과 같이 타개할 수도 있지만 먼저 백3으로 몰고서 9로 끊어가는 맥점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백돌들은 잡기 어려운 돌이었다.

참고도8(눈에 뻔히 보인다)


다음 백은 중앙 흑 한점을 잡는 것과 중앙 백돌을 움직여 나오는 것이 맛보기가 됐다. 흑1로 움직여 욕심을 부린다면 다음 백2의 움직임이 통렬해진다. 버티는 그림이 없다.

실전진행4(설상가상)


가뜩이나 불리한 마당에 실전은 엎친데 덮친격이 되고 말았다. 초읽기 연장책으로 쓴 흑1, 3, 5 중 흑5가 헛수가 된 것이다.

백이 손을 빼버리고 8로 움직이자 바둑은 이걸로 끝이 났다. 허무한 마침표다.

참고도10(복기)


바둑이 끝난 후 유창혁 9단은 흑2로 두는 것이 어땠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것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백15가 선수로 들으며 17, 19의 사는 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흑이 끝까지 잡으려 한다면 흑A, 백B, 흑C의 사활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제5기 지지옥션배 본선22국
●유창혁 5단 ○루이나이웨이 9단
장소: 바둑TV스튜디오
날짜: 2011년 9월 21일
결과: 207수 흑불계승



장면3(흑의 다음 한 수)


초반부터 난전의 양상이다. 백이 지키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흑1의 움직임은 당연한 권리다. 백14로 이은 후 흑의 다음 한 수가 궁금해지는 장면인데 다음 한 수가 유창혁 9단의 기풍변화를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한 수였다.

실전진행5(실리 중시)


실전은 흑1로 상변을 전개했다. 백돌을 간접적으로 위협하면서 실리를 취하겠다는 의도다. 백2의 꼬부림에 흑3으로 재빨리 안형을 갖추는 모습도 꽤 이채롭다.

다음 백6의 마늘모가 조금 한가로운 수였는데 흑이 손을 빼고 흑7로 하변을 두어가니 여간한 큰 자리는 흑이 모두 차지한 모습이다. 흑이 초반 포석을 성공적으로 짰다.

참고도11(과거의 유창혁이라면)


과거의 유창혁 9단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흑1 모자 한 방을 알렸을 것이다. 흑1로 모자를 씌우면 백돌의 상변 탈출이 불쾌해진다.

백2다음 A의 빈삼각을 피해보겠다고 4로 붙여나가면 흑5의 젖힘에 또 다른 빈삼각 형태가 나온다. 전체적으로 백모양이 답답하다.

참고도12(선제공격을 당하더라도)


백은 상변 백돌이 선제공격을 당하더라도 하변을 선점했어야 한다. 하변 백3은 집으로 환산하면 몇 집이나 될까? 배석을 고려했을 때 족히 30집은 돼 보인다.

실전진행6(포석 실패, 그리고 연이은 이상감각)


한 번의 방향착오가 맘에 걸렸던 것일까? 이후부터 루이 9단의 변조가 시작된다. 백5로 한 칸 뛰어 지킨 다음 백7로 침입한 수가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흑18로 뛰었을 때 우변을 지키지 않은 백23도 후속수단을 고려하지 않은 과욕이다. 흑24의 치중에 응수가 곤란한 모습이다.

참고도13(뛰어들 생각이었다면)


우변을 뛰어들 생각이었다면 그냥 백5로 평범하게 지켜놓는 것이 훨씬 좋았다.

실전과 비슷한 수순으로 진행된다고 가정한다면 우변 백진이 다칠 일은 없다. 백5로 지킨다면 흑6으로 바짝 전개하기가 거북스러웠을 것이다.

참고도14(탄력적 행마)


실전진행 백15도 흑에게 리듬을 주는 솔직한 행마였다. 백11과 같이 탄력적으로 진출해 흑의 다음 수를 어렵게 만들었어야 했다.

참고도15(굴욕)


루이 9단의 생각은 이랬을 것 같다. 백1로 지키는 것이 정수겠지만 이렇게 지키게 된다면 애초 두어졌던 백△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흑2로 두면 백돌의 추격과 흑돌의 연결이 맛보기가 된다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참아두는 것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길이었을 것이다.

실전진행7(우변의 주인이 바뀌다)


실전은 백이 파탄 난 모습이다. 흑▲의 치중이 꽂히자 이렇다 할 효과적인 대응책이 없다.

백1로 치받는 반발을 해보지만 흑6의 이단젖힘에 어쩔 수 없이 백 두 점을 떼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졸지에 우변의 주인이 바뀌었다. 이후 모든 근심걱정거리가 사라진 흑은 유유한 마무리를 하면서 반면 10집 이상의 차이를 견지해나갔다.

이 바둑은 아무래도 백의 초반 포석 실패와 이상 감각이 패배의 주된 요소라고 봐야겠다. 유창혁 9단의 돋보이는 감각과 시기적절한 완급조절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겠다.

[글 ㅣ 김상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