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명인전


이세돌 잡는 '돌직구'는 백홍석?
이세돌의 살상력, 백홍석의 파괴력 대결, 명인전 5번승부
[하이원리조트배]

이세돌을 잡을 수 있는 기사는 흔치 않다. 상호전적에서 설령 앞서고 있다 해도 결정적인 승부에선 이세돌이 이겨가는 수가 많다. 그나마 이세돌에게 앞선 전적을 가진 프로도 점점 없어지거나 그 격차가 원래보다 많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구리는 이세돌을 가리켜 '귀신같은 수법(鬼謀)'을 쓴다고 했다. 초반 포석과정의 이세돌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데다, 중반의 난전에 이르면 한 수 한 수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축구'와 비교하자면 이세돌은 영락없이 브라질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영원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것도 그렇고 브라질이 가진 기질과도 닮았다. 흔히 브라질의 기질을 설명할 때 쓰는 말 '징가'는 마치 이세돌을 그대로 설명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브라질의 징가는 우리식의 '신명'에 해당하는 것인데, '힘센 자에 대한 재치있는 반항',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어깃장을 놓지만 결코 밉지만은 않은 장난스러움'이 포함되어 있다.

징가는 요염한 무희들의 삼바 리듬과, 프로 수비수가 엉덩방아를 찧고 마는 브라질 축구의 현란한 드리블, 브라질의 무술, 키포에라의 예상치 못 한 발길질에 반드시 들어가 있는 그런 것이다.

특히 이세돌의 엉뚱하지만 가공할 살상력은 키포에라의 무술과 비슷하다. 키포에라는 백인 정복자에 대항한 브라질 노예들의 타격전문 무술이다. 그들의 발길질과 스텝이 엉뚱하고도 생소한 건 노예상태인 그들의 손과 발이 쇠사슬로 묶인 채였고, 그 자세에서 말위의 정복자들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하기 위함이다. 말위의 정복자는 총칼을 가지고 있고 말밑의 노예는 쇠사슬로 묶인 손발이 자유롭지 못하다. 공격의 실패는 곧바로 죽음이다. 실패한 즉시 말위의 백인은 총과 칼로 무방비의 노예를 난자할 것이다. 따라서 아래에서의 일격은 엉뚱한 방향에서 전혜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일격필살'의 살상력이다. 그 살상력에 '재치'와 '재능'이 번쩍여 잔인한 느낌보다는 아슬아슬한 느낌이 훨씬 강한 것도 다른 공격적 기풍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마치 손발이 모두 묶인 것처럼 초중반 내내 고전하다가, 중후반들어 갑작스레 역전하는 이세돌의 바둑은 흔치 않다. 키포에라의 엉뚱한 발길질처럼 갑작스런 역전과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이세돌의 묘미다. 이런 아슬아슬한 이세돌의 기풍을 좋아한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흉내내기도 힘들다. 브라질 축구를 흉내낸다고 브라질이 아니듯이 이세돌처럼 둔다고 해서 이세돌 바둑은 아니다. 이세돌의 바둑은 그냥 이세돌의 기질 그 자체다.



돌주먹 백홍석, 백홍석은 이세돌을 잡는 돌직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12월 17일 하이원리조트배 결승1국에서 돌주먹 백홍석이 '소름 돋는' 이세돌을 만난다.

이세돌을 상대로 큰 차이로 상대 전적을 벌려 놓은 기사가 하나 있다. 공격적 기풍의 인파이터, 백홍석이다. 이세돌의 공격력을 일격필살의 살상력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백홍석의 공격은 묵직한 파괴력에 가깝다. 좀 더 단순하고 저돌적이며 그리 난잡하게 상황을 꽈서 승리하는 기풍은 아니다.

13일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반집으로 구리를 두 번 이길 때 사람들은 짜릿함을 견디다 못해 '소름이 돋는다'는 표현을 자주 쓰곤 했다. 백홍석의 바둑은 '소름이 돋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목마를 때 시원한 맥주를 들이킬 때처럼 통쾌하거나 시원한 그런 느낌이다.

백홍석은 바둑판을 넓게 쓰고 통 큰 작전을 택한다. 프로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실리를 과감히(?) 포기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골대를 향해 일적선으로 달려가는 전형적인 잉글랜드 풍의 축구를 연상시킨다. 이른바 '뻥 축구', 공을 뻥 차놓고 전속력으로 공을 향해 달려간다. 거센 몸싸움을 거치며 가장 빨리 공을 잡아 일직선으로 승리를 쟁취한다. 한 번 이런 바둑에 휘말리면 현란한 개인기는 써 볼 틈이 없다. 그냥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한 명이 쓰러지게 되어 있다. 백홍석은 '아슬아슬'함보다는 '통쾌함'의 느낌이 강하다.

백홍석의 바둑은 거친 몸싸움에 바람 잘 날 없는 내용이 많다. 17일 1국 해설을 맡은 최원용 6단은 "백홍석이 기풍에 있어선 이세돌보다도 공격적이라 할 수 있다. 이세돌은 받아치는 펀치가 강하지만 백홍석은 먼저 돌주먹을 날린다. 싸움을 먼저 건다. 저돌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안정성은 약간 떨어져 올해 초까지는 우승'운'이 따라주지 않았었다. 딱 올해 초까지 말이다. 준우승만 10회라는 통계도 나왔다. 그러나 세계대회인 BC카드배에서 우승하면서 달라졌다. 그 전까지 이세돌, 최철한, 원성진 같은 공격형 바둑에 강하고, 박영훈, 이창호 풍의 바둑에 약했으나 이때부터 승률 자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떤 스타일의 기사를 만나도 더 안정적인 승률을 올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단 결승에 올랐을 때의 우승 가능성이 2012년 이후로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을 알려준다.

한국 바둑계는 '이세돌-백홍석'의 하이원리조트배 결승5번기 승부에 대해 '3-1로 이세돌이 우승할 가능성'을 대체로 높이 보고 있다. 최원용 해설은 "이세돌이 삼성화재배에서 두번의 반집승으로 구리를 이기기 전까지는 6-4, 혹은 그보다 낮은 비율로, 이세돌이 약간 더 유리하지 않을까했는데, 삼성화재배의 기세를 보고는 7-3 정도로 이세돌이 우세한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7-3의 예상은 삼성화재배 결승 승부를 보고난 기분이니까 그런 거고, 막상 닥치고보면 승부의 결과는 모르는 것이다. 5번 승부의 첫 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백홍석의 선전을 예상하는 경우도 있다. 20일 3국 해설을 맡은 한종진 감독(오로)이 그렇다. 한 감독은 "백홍석은 올 들어 바둑생애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이제 군입대를 앞 둔 시점이라 배수진을 친 격이다. 이세돌은 이번 주 삼성화재배 결승에서의 반집승 두 번으로 너무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심리적인 긴장이 풀어졌을 수 있다. 승부를 봐야 하겠지만 이건 결승5번기의 한가지 변수다"라고 진단했다.

한 감독은 "전반기 최고의 성적을 올린 백홍석(BC카드배 우승, TV아시아 우승)과 후반기 최고의 성적을 올린 이세돌(olleh배 우승, 삼성화재배 우승, 춘란배 결승진출)이 맞붙는다. 전반기 챔피언과 후반기 챔피언이 맞붙는 승부라 흥미롭다. "면서도 객관적인 전력은 이세돌이 앞섰다는 것을 먼저 인정했다.

그는 "승부의 무게중심은 물론 이세돌이다. 65: 35 정도로 이세돌-백홍석의 5번기 승부결과를 보는 게 객관적일 것이다. 그러나 백홍석은 이세돌에게 항시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스타일에 따른 상대성이다. 이세돌 스스로도 그런 결과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해왔다. 백홍석이 워낙 공격적이고 파워넘치는 바둑이라 같이 부딪치다보면 누가 이길지 모르는 것이다." 면서 "이세돌이 결승에 오른 후 '(백홍석과) 속기대국이 많아서 결과가 안좋았다. 명인전은 제한시간이 길고 1분 초읽기니까 나름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이세돌-백홍석 결승5번승부 일정
- 해당일 정오

1국 12월 17일 : 해설 최원용 6단
2국 12월 18일 : 해설 이지현 4단
3국 12월 20일 : 해설 한종진 감독
4국 12월 21일 :
5국 12월 26일 :




▲ 13일 삼성화재배 시상식에서, 우승자 이세돌의 환한 표정과 함께 준우승자 구리의 표정이 대비된다. 호탕한 구리였지만 어쩔 수 없다. 두번의 반집패는 시쳇말로 '멘탈이 붕괴될 정도'였을 것이다. 이 승부를 보고 이세돌-백홍석의 명인전 결과 예상평은 급격히 이세돌 쪽으로 쏠렸다.


제40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의 우승상금은 8000만원, 준우승 상금은 2400만원.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3회가 주어진다.

최병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