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꼽는 빅매치였다.
5월 들어 김지석과 박정환은 한국랭킹을 맞바꾸면서 2위와 3위에 올라 있다.‘포스트이세돌’은 누구냐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두 기사이기도 해서 아마 관전하고 싶은 매치를 투표하면 1, 2위를 다투지 않을까 하는 조합. 김지석vs박정환전은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20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제9기 한국물가정보배 본선 더블일리미네이션 C조 1회전에서 박정환이 김지석에게 171수 만에 흑불계승을 거뒀다.
“수읽기의 결정판이네요”
바둑TV해설을 진행하던 김영삼 9단이 연방 찬탄한다. 우승 후보로 손색이 없는 기사들의 무시무시한 수읽기 쇼가 펼쳐졌다.
이른 시기에 시작된 난타전은 중반 들어 더 뜨겁게 달아올라서, 책에 나오는 맥점들이 수시로 무시되고 실전적 강수가 난무했다. 대국자들은 반상에 더 가깝게 다가 앉았고, 이 대국을 주시하던 이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 천적인가?
천원 부근에서 박정환이 약간의 득점을 올리면서 판세가 기우는 것 아닌가 했는데 이내 김지석이 따라붙었다. 좌변에서 이른바 ‘버티는 수읽기’로 백이 해낼 수 있는 거의 최대한의 좋은 결과를 냈다.
바둑은 뜻밖의 장소에서 요동쳤다. 김지석은 좌하에 자신이 잡아 놓은 돌을 놓아줬다. 자신의 돌이 거꾸로 잡히는 걸 감안하면 30집이 넘는 가치. 이렇게 큰 곳을 포기하더라도 중앙 흑 공격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박정환의 끼우는 묘수(143)를 당하자 실리 손해만 막심했다.
김지석은 고심 끝에 좋은 수를 발견했다. 자충을 이용해 우측 흑을 잡는 수단이었다. 박정환은 그러나 다 읽고 있었다는 듯 척척 대응해 나갔고 김지석은 잡는 수가 잘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흑을 놓아주고 말았다. 놓아주면 실리로는 해 볼 수가 없는 상황.
유리해진 박정환은 더욱 끈을 조였다. 중앙 자신의 돌을 선수로 완생하고 중앙 백을 괴롭혔다. 김지석은 더 버티지 못했다. 백기를 들었다.
종국 직후 벌어진 복기가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박정환은 우변에서 자신의 돌을 김지석이 잡는 수가 있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배를 하나 더 채워두는 수단. 바둑을 너무 비관한 김지석은 그 수단을 놓쳤다.
▲ [왼쪽 그림]흑이 끊자(백1의 왼쪽 빈 자리) 김지석이 백1로 잡았다. 평소라면 당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다음 박정환의 흑2의 건너붙임이 멋들어진다. 만약 백이 계속 잡으러 간다면 이하 흑14까지 진행되어 회돌이축이 시작된다. [오른쪽 그림] 복기가 시작되고, 박정환은 백1 자리에 돌을 갖다 놓는다. 흑2로 받으면 백3으로 잇는다. 흑4부터 앞 그림처럼 진행되면 수상전이 달라져 백이 흑을 잡는다.
이 대국을 관전한 바둑 관련 기자들과 관전 필자들은 “김지석 9단이 조금만 더 버텼으면 명승부를 더 길게 볼 수 있었는데…”라며 무릎을 쳤다.
박정환은 다가올 승자전에서, 선착해 있는 이영구와 대결하게 된다.
박정환과 김지석의 상대전적은 10승3패(박정환 기준)로 차이가 좀 더 벌어졌다. 박정환은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7연승을 거둔 적이 있어 김지석 천적으로 꼽히고 있었다. 박정환-김지석 천적 이야기는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한국물가정보배 본선 모든 대국은 사이버오로 대국실에서 수순중계되며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OS 기반 스마트폰에서 <오로바둑>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관전할 수 있다.
본선리그 더블 일리미네이션(Double Elimination) 이란?
더블일리미네이션은 4명 단위로 한 조를 이뤄 각 조별 1, 2위만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1, 2회전에서 2승을 거둔 대국자는 조 1위로 결선토너먼트에 진출하고, 2패자는 탈락한다. 1승 1패를 거둔 대국자들이 만나는 3회전 승자가 조 2위로 결선 토너먼트에 오른다. 일종의 변형 패자부활전.
한국물가정보배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던 이 경기방식은 승부의 의외성을 줄이고 실력 있는 강자가 일찍 탈락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각각의 대국이 모두 의미가 있기 때문에 관전자의 입장에서도 매판 더욱 흥미진진하게 본선 진행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
본선 토너먼트 진출자를 가리기 위해 각 조는 총 5판(1회전 2판, 2회전 2판, 3회전 1판)의 대국을 두게 된다. 대국자 입장에서는 간단하게 두 번을 이기는 순간 결선진출, 두 번 지면 탈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물가정보배는 2005년 창설, 2013년에 9기로 이어졌다. 예선 통과자 10명과 전기 4강 시드자 4명(안성준 4단, 김지석 9단, 이영구 9단, 박정환 9단), 후원사 추천시드 2명(조한승 9단, 박승철 7단) 등 모두 16명이 4개조로 나뉘어‘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으로 결선 진출을 다툰다. 결선은 8강 토너먼트며 결승은 3번기로 벌어진다.
(사)한국물가정보가 후원하고 한국기원과 바둑TV가 공동주최하는 제9기 한국물가정보배의 총규모는 2억 3,200만원이며 우승 상금은 3,000만원, 준우승 상금은 1,000만원이다. 제한시간은 10분, 초읽기 40초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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