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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궁지에 몰린 쥐의 한방이 고양이를 잡는다
"내가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 같다고? 그렇지 않다. 내 바둑은 항상 나빴다. 오히려 나는 궁지에 몰린 고양이 앞의 쥐였다. 그러나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 상대가 한방에 걸린 거다. 어쩌면 운이다."
6기까지 진행된 한국물가정보배의 역사중 절반의 우승을 차지했다. 6년동안 3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이 있고, 그 과정중엔 휴직으로 인한 수두룩한 기권패가 섞여 있다.
이세돌 9단의 이야기다. 이세돌 9단이 제6기 한국물가정보배 우승을 차지했다. 9월 15일 열린 결승 2국에서 이창호 9단을 이겨 '2-0'의 완봉으로 3번기를 끝냈고, 우승상금 3000만원도 손에 넣었다. 휴직후 이창호 9단을 상대로 한 첫 결승무대여서 의미가 컸고, 작년 휴직사태때 본선리그의 대부분을 기권으로 패했기에 이번 우승은 또한 의미가 컸다.
이세돌 9단을 결승 2국 대국이 끝난 분당 바둑TV 스튜디오 현장에서 인터뷰했다. 이세돌 9단은 기분이 좋았으나 은근히 진지했다.
- 전혀 긴장을 하지 않은 거 같애요. 이번 결승2국은.
"부담을 가지지 않으려 했어요. 그리고 져도 3국이 있으니까."
- 연구를 통한 실력향상이 있었나요?
"당일의 컨디션이 가장 중요하죠. 연구를 통해 실력을 높인다긴 보단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겁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기죠. 실력이 늘지는 않지만 자신감이 생길수 있기 때문에 연구가 필요해요."
- 최근에 '이세돌 명국선'을 냈습니다. 이것도 자신감 향상이나 실력향상에 도움이 됐는지?
"꼭 그런건 아니에요. 평상시라면 이런 작업을 할 수 없어요. (작년)휴직 때 남는 시간이 많아서 가능했던 거죠. 좋은 계기가 됐어요. 예전의 바둑을 돌아보면서 공부도 많이 됐구요. 이전 바둑을 보니 새롭데요."
- 제 느낌, 혹은 기자들의 느낌입니다만, 이세돌 9단은 이창호 9단에게 전혀 밀릴 것이 없다는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상대전적이 그리 좋진 않았던 거 같아요.
"아시다시피 (승부에 임해선) 당연히 이긴다는 생각을 합니다. 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피식, 웃기는 거잖아요.) 승부에선 이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평상시는 달라요. 이창호 9단은 나의 목표였고, 그 실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항상 윗길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 이번 결승대국의 상대가 특히 이창호 9단이었기에 우승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휴직 후 국내결승의 첫 상대이기도 했구요.
"아, 물론 이창호 9단이기에 의의가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속기니까, 뭐랄까 변수가 많잖아요. 너무 큰 의미를 두기엔 부족하죠. 명인전 같은 긴시간의 대국에서도 이긴다면 의미가 더 크게 부여될 수 있겠죠. 그리고 저녁 8시에 시작된 대국이니까 피곤하죠. 이창호 9단 같은 경우는 더 피곤함을 느낄 수도 있어요."
-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세돌 9단은 말랐어요. 너무 말라보여서 안쓰럽다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만.
"하하. 운동도 하고 규칙적인 뭔가도 해야하는데, 그런 것이 안되네요."
- 본인 스스로 초반이 약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나요? 요즘엔 초반에 자신감이 생긴 것인가요?
"(초반에 대한) 부담은 항상 있지요. 그런 건 있지만 앞으로 평생을 (승부할) 할 생각을 한다면 공부를 천천히 해나갈려고 해요. 잘 안풀린다고 그래봤자 갑자기 막 좋아지고 그럴리 없잖아요. 그런 부분에 부담을 가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 해설자들의 평입니다. 이번 한국물기정보배 결승 3번기는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의 기풍이 바뀌었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창호 9단은 사나워졌고, 이세돌 9단은 좀더 진득해졌어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음, 꼭 그렇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렇지만 그렇게 될 때도 있는 거구요. 이창호 9단이 최근 공격적으로 변한건 사실이에요. "
- 그렇다면 과거의 이창호와 현재의 이창호는 어떤가요?
"힘든 건 똑같아요. 지금이 더 힘든 것도 같고"
- 역시 동료 프로기사들이나 해설자들의 평입니다. 이세돌 9단의 바둑을 보면 마치 고양이가 쥐를 모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때가 많다고 해요. 창하오와 겨뤘던 제2회 비씨카드배 결승도 그랬구요.
"비씨카드배 결승은 워낙 쉽게 풀렸어요. 예외적인 것입니다. 오히려 거꾸로에요. 제가 궁지에 항상 몰렸고,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그런 것이었어요. 제가 궁지에 몰린 쥐였죠. 안되니까 마구 휘두르다가 운좋게 펀치에 걸리면 이기는 거였죠. '럭키 펀치'라고 하나요? 그런 거에 걸려드니까. 운이 많이 따랐어요. 운이죠.
콩지에 9단과도 불리한 판이 많았어요. 창하오 9단과의 판도 제가 불리한 판이 많아서 뭔가 걸려 드는 수를 둘 수 밖에요. 제가 워낙 잘 풀린 판도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가 걸려든 거죠. 어쩌면 운이죠. "
- 허영호 7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요. 춘란배 8강에 같이 올랐던데, 중국가서 크게 한잔 쏠 건가요? (이세돌 9단은 허영호 7단과의 준결승에서 지각패 결정 1분전 입장해서 바둑을 시작했다. 게다가 매우 불리했던 바둑을 역전승했다. 이번 대회에서 본인의 가장 인상적인 판으로 꼽기도 했다.)
"하하. 그럴까요. 바둑이 나빴어요. 게다가 전날 대국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당일에 착각을 했죠. 지각한 거는 미안해요. 심리적인 요인이 있거든요. 보통 지각한 사람이 제한 시간도 없이 바로 초읽기를 하니까 불리한 거 아니냐 그러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오래 기다린 사람이 훨씬 더 심리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거거든요. 또 허영호 7단에겐 내가 한참 선배고, 그런면에서 매너가 결코 좋은 것도 아니었고 해서요. 좋은 모습을 보인 게 아니니까 미안하죠."
- 후배 기사들중에 어떤 식으로든 조망받을 만한 후배를 꼽는다면.
"지금은 다 능력이 뛰어나죠. 누구나 다 크게 발전할 능력이 있어요. 선두주자는 박정환, 김지석이 있겠죠. 실력은 엇비슷한거 같고 기세만 탄다면 확 치고 올라갈 가능성이 있어요. 전부 다 가능성이 있어요."
- 음,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현실적으론 이창호, 이세돌 두사람의 이름이 들어간 뉴스와 그렇지 않은 뉴스와는 조회수가 천지차이죠.
"음. 그런거 같아요, 저로선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에요, 이창호-이세돌이 지금 좋다, 그래서 중국 신예들도 이겨주고 하는데, 그런건 우리보다 더 특출한 기사가 나올 때 까지죠. 그 때 까지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에요. 승부로만 본다면 말이죠."
- 전에 휴직할 때, 승부 이외의 일들도 준비를 한다고 그랬는데, 지금 준비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그 땐(휴직당시) 일찍 승부로 돌아온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냥 바둑팬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결승전을 응원해주신 분들께도 감사하구요. 보답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죠."
이세돌 9단은 "내가 슬럼프에 처해 있을 때 그것을 벗어나게 해준 것은 한국물가정보배다, 내가 기세를 타기 시작하면 가속도를 붙여준 것도 한국물가정보배다. 이런 기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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