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좋아하는 그녀! (박영훈 9단 vs 최원용 4단)

○최원용 4단vs ● 박영훈 9단 “누구 바둑이야?” 어느 틈에 그녀가 와 있었다. 어깨와 목이 훤히 드러나는 푸른색 레이어드 민소매에 롤업진 팬츠를 입은 그녀는 뱀가죽 느낌을 주는 웨지힐 샌들을 신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그녀는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렸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그 옷을 입어 온 것처럼. “글쎄…. 그게 뭐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가 입술을 내밀어 보였다. 그러고는 가서 레귤러 사이즈의 차가운 아이스커피 두잔을 들고 왔다. “꽤 많이 진행됐네? 형세는 어때?” “아직 알 수 없지. 이제 초반인 걸. 그러고 보니 머리를 잘랐네?” “여름이니까.” 흑2의 타이밍이 기막히게 좋았다. “알아 둬. 흑에게 선수로 당하기 싫다고 해서 〈복기1〉의 백1로 한점을 잡는 것은 흑이 2로 느는 게 선수가 되지. 흑4로 백 요석 한점이 잡히고 마는 거야.” “흐음…. 정말 그러네.” 그녀가 두 눈을 빛내며 A4 용지 2장만한 휴대용 자석 바둑판 위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만난 지 2년이 지났는데, 그녀는 여전히 바둑을 좋아하고 있다. 흑10이 놓인 이상 백은 11로 도망가야 한다. “백15가 이 바둑의 승착일지도 모르겠군. 너무 절묘해서 말을 잃을 정도야.” 나는 〈복기2〉를 놓아 보였다. “백17에 흑은 〈복기2〉의 1로 나가고 싶지. 하지만 백4로 잇게 되면 어떨까?” “백은 a와 b가 맞보기로군. 흑이 곤란할 것 같아.” “맞아. 흑18을 허용하고 백19로 잡은 것은 어쩔 수 없지.” 흑이 20으로 귀를 단속한 것 역시 권리가 아닌 의무일 것이다. 〈김영삼 7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