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실토를 하고 말았다. 나는 언제나 그녀 앞에서 거짓말을 못했다. 그것이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다시 연인에서 친구가 돼 버리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 공감한다. 우리는 충돌한 것이 아니다. 그저 서로가 더 이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하에서의 무의식적인 진화를 거부했을 뿐이다.
“박영훈이 백?”
“아니, 흑.”
그녀가 놀란 눈을 했다. 하긴 존재의 무게감이야 박영훈 쪽이 비할 수 없이 높다. 그러나 바둑판은 평평하다. 그리고 대국자는 평등하다.
백1로 붙였을 때 흑은 〈복기1〉 1로 늦춰야 했다. 그리고 실전처럼 패를 계속하면 그만이다.
〈복기2〉처럼 둘 수도 있다. 백2에 흑은 패를 하지 않고 3으로 좌하귀에 뛰어드는 것. 이는 패를 유지하면서 귀에서 분란을 일으켜 보자는 고급 전술이다. 어찌됐든 흑이 다급한 바둑인 것이다.
흑이 2로 젖히는 바람에 백7로 끊는 팻감이 생겼다. 본래는 악수이지만 지금은 좌상귀의 패가 너무도 중요하다.
백19로 지키면서 사실상 백승이 확정됐다. 흑은 중앙 백을 잡았지만 워낙 초반 집 차이가 커서 이 정도로는 형세를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려고?”
“모처럼 친구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거든.”
“그래, 즐겁게 지내.”
“응. 나중에 봐.”
“응.”
잠시 후 내가 있는 2층 창가에서 건널목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반대편에서 오는 택시를 잡더니 그대로 타고는 사라져 버렸다.
〈복기2〉처럼 둘 수도 있다. 백2에 흑은 패를 하지 않고 3으로 좌하귀에 뛰어드는 것. 이는 패를 유지하면서 귀에서 분란을 일으켜 보자는 고급 전술이다. 어찌됐든 흑이 다급한 바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