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바둑이로고! (목진석 9단 vs 강동윤 4단)

○목진석 9단vs ● 강동윤 4단 “놓아 보거라.” 스승이 말했다. 바둑판 앞에서 그는 늘 준엄했다. 제자는 조용히 한수 한수를 바둑판 위에 늘어놓았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반상에는 흑백의 미학이 점점이 뿌려져 간다. “옳거니! 백3은 발이 빠르게 두겠다는 것.” 스승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백돌 한점을 들어 〈복기1〉 백1로 두었다. “보통은 이렇게 둘 수도 있을 게다. 어찌 보이느냐?” “양쪽에 흑이 포진해 편할 듯싶사옵니다.” “그렇다. 그래서 백이 발빠르게 둔 것이다.” 잠시 멈추었던 복기가 계속됐다. 다동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방안으로 들어와 다구를 내려놓았다. 잠시 후 물이 끓는다. 아마도 아침에 받아온 석간수(石間水)일 것이다. 스승은 말년에 들어 차를 각별히 좋아했다. “나이가 드니 이놈의 입에 차가 들어가지 않으면 도시 말이 나오지 않는단 말씀이야. 헐헐.” 흑6의 양걸침에 백은 7로 어깨를 짚는 수법을 택했다. “〈복기2〉 백1로 나가는 것이 무난하다.” “그렇다면 〈실전〉 백7은 무슨 뜻이오이까?” “〈복기2〉에 비해 한결 적극적으로 흑을 압박하겠다는 뜻이다. 어차피 귀에는 사는 맛이 남아 있으니.” 두잔의 차가 놓였다. 스승은 찻잔을 들더니 어린 손녀라도 대하듯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차의 빛깔을 음미했다. 이윽고 코로, 다시 조심스레 차를 한 모금 입에 물고는 눈을 감고 맛을 느꼈다. 그럴 때의 스승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노인 같았다. “차는 바둑이로고….” 스승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김영삼 7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