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바둑은 극미한 끝내기 싸움으로 접어들었다.
계속된 흑의 수 낭비로 곡식이 산더미를 이뤘던 곳간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초조해지는 쪽은 흑이다.
〈실전〉의 흑2는 〈복기1〉의 1·3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깔끔했을 터다.
“제 눈에도 흑2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스승이 손을 들어 흑2를 가리켰다. 뼈마디가 툭툭 불거진 앙상한 손. 평소에는 병약한 노인의 손에 불과하건만 바둑돌을 쥐면 그것은 세상 그 어느 장인의 손보다 위대해 보였다. 그것은 하나의 경이이자 신비였다. 제자는 스승의 손을 몹시도 사랑했다.
“흑은 〈복기2〉의 백1 이하로 흑을 잡으러 오는 수가 두려웠던 것이다. 조금만 더 읽으면 능히 볼 수 있었을 터이나 시간이 모자랐겠지. 게다가 지금 흑의 마음바다에는 격랑이 불고 있음이니.”
스승은 흑돌 하나를 들어 흑6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제자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튀어나온다. 이 한 수로 백은 흑을 잡으러 올 수 없는 것이다.
〈실전〉의 흑4는 6의 자리가 다소 나았을 것이다. 어쨌든 좌하에서 흑이 꽤 당했다. 흑18은 설상가상. 만약 이 바둑을 졌다면 패착으로 야단을 맞았을 수다. 이후 우하귀에서 패가 났으나 흑에게는 팻감이 없었다. 그러나 바둑은 치열한 끝내기 승부 끝에 백의 실수가 나와 흑이 반집차의 신승을 거뒀다.
“이 바둑을 흑이 이긴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제자가 마지막 수순을 늘어놓더니 반상의 돌을 통 속으로 쓸어담았다.
“흑도 배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제자는 스승에게 예를 갖추고는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다동이 들어와 노인의 빈 잔에 새로운 차를 따랐다. 스승은 눈을 감은 채 잔을 들어 흠향했다.
“차의 맛은 반집처럼 미묘하다. 반집을 알 수 있다면, 그는 능히 차를 마실 자격이 있을 것이다.”279수, 흑 반집승.
“흑은 〈복기2〉의 백1 이하로 흑을 잡으러 오는 수가 두려웠던 것이다. 조금만 더 읽으면 능히 볼 수 있었을 터이나 시간이 모자랐겠지. 게다가 지금 흑의 마음바다에는 격랑이 불고 있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