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패왕’ 이창호의 발목을 아프게, 그것도 중요한 고비에서 깨물어 온 2명의 젊은 사자들. 이창호는 그 이름들을 잊지 못한다. 이세돌, 그리고 최철한.
이창호는 이들을 대할 때마다 잊고 살았던 세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덧 자신도 서른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미 수년 전, 그는 힘만으로는 이들 거친 후배들을 다스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알고자 하지 않았으되 어쩔 수 없이 알아야 했다.
‘수업료가 꽤 비쌌지.’
가벼운 목례와 함께 대국이 시작됐다. 두 사람 모두 무심한 얼굴이다. 일요일 오후,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운 조객(釣客)들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누군들 알 수 있으랴. 두 사람의 가슴속에 일렁이는 노도와 같은 승부혼을!
초반의 흐름이 미묘하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의식하고 있음이다. 명패를 보지 않는다면 흑백의 주인이 뒤바뀐 듯한 느낌마저 준다. 최철한은 최대한 두텁게, 안전하게, 느리게 판을 짜나가고 있다. 이창호의 기다림을, 오늘은 최철한이 보여줄 태세다. 물론 그의 본능이 어느 한계까지 허락할지가 의문으로 남기는 하지만.
백5가 어떨까? 본래 교과서에서는 금기시하는 행마. 흑의 배후가 빈 상황에서 백5로 붙여 흑6으로 세워 주는 것은 본시 18급의 행마로 멸시당한다. 하지만 이 수는 이창호의 수. 뭔가가 있을 것이다.
〈복기1〉. 보통은 백1로 받는다. 흑은 2로 뛰어들고 8까지 귀를 파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창호는 이것이 싫다는 얘기다.
흑8이 이창호의 구상을 외면했다. 백의 바람은 〈복기2〉의 흑1. 이것이라면 훗날 백이 4로 젖혀 잇고, 다시 a로 붙이는 끝내기 맛이 남는다. 물론 최철한이 이렇게 두어줄 리 만무하다. 이창호 역시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5가 어떨까? 본래 교과서에서는 금기시하는 행마. 흑의 배후가 빈 상황에서 백5로 붙여 흑6으로 세워 주는 것은 본시 18급의 행마로 멸시당한다. 하지만 이 수는 이창호의 수. 뭔가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