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냄새! (이창호 9단 vs 최철한 9단)

○이창호 9단vs ● 최철한 9단 백1이 좋다. 이창호다운 정교함이 묻어 있다. 〈복기1〉의 흑1로 차단하면? 백은 2·4를 선수한 뒤 6으로 가볍게 살아버린다. 흑은 두눈 뜨고 집문서가 날아가는 꼴을 좌시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곤란하지.’ 흑2는 어쩔 수 없는 후퇴다. 흑8로 패. 문제는 팻감 때문에 흑이 굴복할 수밖에 없는 패라는 점이다. 흑18이 패착이 아니었을까? 이 수로는 그냥 〈복기2〉의 흑1로 늘어 끝내기를 하는 것이 실전보다 나았을 것이다. 이렇게 처리하고 흑은 선수를 잡아 다른 큰 자리로 갈 수도 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최철한은 차가운 땀 한줄기가 뒷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혼탁함은 미지의 세계다. 유리한 자가 결코 걸을 길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깊은 산중에서 만나는 안개와도 같다. 상대방보다 앞서 있다고 해서 조난의 위험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본능은 그에게 끊임없이 위험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아무래도 조난을 당하는 쪽은 이쪽이 될 모양이다. 최철한은 눈길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스튜디오의 밝은 조명이 두 눈을 아프게 찔러 왔다. 차가운 물 한 동이를 뒤집어쓴 느낌이다. 이제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두려워졌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이미 수비를 강화할 시점은 지났다. 그렇다면 오히려 공격수를 집어넣어야 하는 건가? 아니, 전원 공격을 명해야 할 순간인가? 최철한은 눈을 빛내며 반상으로 돌아왔다. 바둑판 위에서는 바야흐로 역전의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실전〉 11은 1의 자리). 〈김영삼 7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