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끝내기전이 이어지고 있다. 신산(神算)의 정밀함에 최철한은 소름이 돋는다. 물론 자신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종반의 운영이라면 자신도 천하에서 손을 꼽아 주지 않던가.
백1에 흑은 〈복기1〉의 1로 끊을 수 없다. 보다시피 흑이 안된다.
백13도 좋은 끝내기다. 〈복기2〉의 흑1로 이었다간 백2로 양단수에 걸려들게 된다.
“한집반이죠?”
최철한의 말에 이창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여 긍정해 보였다. 계가를 끝내니 과연 흑의 반면 5집승. 하지만 덤 6집반을 주고 나면 흑이 한집반을 지게 된다. 간단한 복기를 나누고, 목례를 하고, 반상의 돌을 거두었다. 승부의 과정은 길지만 그 끝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간명하다. 쿨하다.
며칠 뒤 후배 기사 한명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날의 바둑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후배는 소주 몇 잔에 얼근해진 얼굴로 말했다.
“나는 도저히 그런 바둑은 못 둘 것 같아. 어떻게 그런 바둑을 버틸 수 있는 거죠?”
이창호에 대한 얘기였다.
“글쎄, 던지기는 아쉽고 해서 조금 더 두어 보자고 했던 건데, 흑이 자멸한 것은 아닐까?”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후배가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창호에게는 분명 우리가 배운 것과는 다른 형세판단의 툴(tool) 같은 게 있는 듯해요. 그것이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든 스스로 깨달은 것이든 분명 뭔가가 있어요.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다초점 렌즈와도 같은 거죠.”
후배는 소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이어 말했다. 마치 자기 자신을 향해 들려주듯.
“곧 나도 알 수 있게 되겠죠.”
후배는 이창호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곧 이루어질 일이었다. 그 역시 승리를 거듭한 끝에, 이미 이번 대회 4강에 선착해 있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만남을 축복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소주 한잔을 온전히 목구멍 속으로 털어넣었다. 문득 나도 이런 축복을 받으며 소주를 마시고 싶어졌다. 내년에는 가능할지 모르겠다(〈복기1〉 7은 2의 자리).
“나는 도저히 그런 바둑은 못 둘 것 같아. 어떻게 그런 바둑을 버틸 수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