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1로 잇는 데까지 사실상 이 바둑은 끝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까지 이창호는 자신의 이름에 손톱 한 조각만한 흠도 입히지 않는 완벽한 바둑을 두었다. 누가 보더라도 ‘과연 이창호’다 싶을 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의 바둑은 그의 바둑이 아니라 보아도 무방할지 모른다. 이것은 이창호가 아닌, 이창호도 어쩔 수 없는, 우주 저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에 의한 필연에의 반작용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한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세상에는 상식의 궤를 벗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좁은 반상에서 이루어지는 졸렬한 변화조차 우리는 모두 알지 못할진대, 반외는 어떠하랴.
한잔의 소주를 ‘카악∼’ 털어넣고 신음을 앓듯, 우리는 배우고 아는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이다. 그 밖의 일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우리의 소관이 아닌 이상, 천명의 가혹함에 토를 달 일도 없다. 마치 이 바둑처럼.
이창호가 흑3으로 두텁게 백 한점을 잡아 두었다. 바둑이 좋으니 마음이 풀어진 탓이다. 사실 이 수로는 〈복기1〉의 흑1로 한칸 뛰는 것이 완벽했다. 백은 2로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전과는 큰 차이가 난다. 게다가 흑1과 백2의 교환이 있다면 백이 A로 붙이는 고약한 맛도 사라져 버린다. 〈실전〉은 백4가 먼저 놓이고 말았다. 이 수는 집으로도 크지만 〈복기1〉 A의 맛을 노릴 수 있게 됐다는 보너스가 딸려 있다. 흑으로서는 찜찜한 일이다.
흑11. 꼭 이렇게까지 두어야 했을까? 아무래도 〈복기1〉을 놓친 것이 이창호의 가슴에 타박상을 입힌 모양이다. 흑11에는 차가운 살기가 흐른다.
〈복기2〉의 흑1로 두었으면 가장 알기 쉽다. 백이 a로 붙이면 흑 석점이 죽게 되지만 하변을 이렇게 지키는 정도로도 흑이 불리하지 않다.
한잔의 소주를 ‘카악∼’ 털어넣고 신음을 앓듯, 우리는 배우고 아는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이다. 그 밖의 일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우리의 소관이 아닌 이상, 천명의 가혹함에 토를 달 일도 없다. 마치 이 바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