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가 분노하고 있다. 흑1로 붙여 백을 잡으러 간 것이다. 다분히 아마추어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지난호에 이어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누가 이창호를 분노하게 만들었는가.’
이창호의 분노는 바둑판 전체를 거침없이 흔들어대고 있다. 그것은 밤바다의 풍랑과 같다. 이렇게 되면 승패가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돼 버린다.
흑7까지 백의 외곽을 빈틈없이 막아 버렸다. 백은 8로 붙여 일단 안에서 숨구멍을 만든다. 이것으로 산소부족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어졌다.
흑9. 혹시 〈복기1〉의 흑1에 눈길이 가지는 않았는지? 뭔가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백4의 마늘모가 절묘한 수다. 이것으로 수상전은 백의 승리. 결국 〈실전〉의 흑9는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다.
운명의 여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아직도 갈등 중인가 보다. 이창호를 괴롭히더니 이번에는 최원용의 등을 밀어버렸다. 백10. 수순이 틀렸다.
〈복기2〉의 백1을 먼저 두어야 했다. 이것이라면 백이 쉽게 이겼을 것이다.
두 사람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홍조가 물든다. 저녁 무렵 산기슭의 석상에 조용히 깃드는 노을과도 같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져 나가는 반상으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어디선가 산사의 고즈넉한 범종 소리라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영혼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는다.
이창호를 두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었다고. 세계의 프로들은 지난 십수년간 그의 기보를 텍스트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왔다. 그리고 이제 그는 조금씩 지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나이와 연륜이 쌓이듯, 그에게도 패배가 먼지처럼 쌓여 가는 것이다(〈복기1〉의 12는 9의 자리).
흑9. 혹시 〈복기1〉의 흑1에 눈길이 가지는 않았는지? 뭔가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백4의 마늘모가 절묘한 수다. 이것으로 수상전은 백의 승리. 결국 〈실전〉의 흑9는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