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1이 최원용의 실수라는 말은 지난 시간에 했었다. 백3의 젖힘, 이 수로 〈복기1〉의 백1로 두면 어떻게 되나?
백은 흑 다섯점을 잡고 흑은 하변을 넘어간다. 백이 잡은 것이 꽤 커 보이지만 고작 열집에 불과하다. 오히려 꼬리처럼 보이는 흑은 몸통이 살아가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백●의 과오다.
졌으면 일평생 패착의 멍에를 주홍글씨처럼 파고 다녀야 했을 것이다. 흑6까지 결국 우하의 흑이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렇데 돼선 흑이 망한 바둑이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복기2〉를 천천히 뜯어보자. 〈실전〉 흑4로는 흑1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백은 2로 잇지 않을 재간이 없다.
본격적인 흑백의 몸싸움이다.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흑이 막상 몸부림을 치게 되니 만만치 않다.
백10의 단수에 흑은 물론 12 자리로 이을 수 없다. 11로 막아 패를 향해 돌진한다. 문제는 이 패가 흑에게는 부담이 없다는 점. 백이 14로 패를 해소하는 동안 흑은 13·15로 상변을 연타할 수 있다. 이 결말은? 그렇다. 이것은 흑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우하 흑대마를 버리며 얻은 것은 중원을 향해 끝없이 늘어선, 만리장성과 같은 흑의 외벽이다. 붉은 노을에 물든 장성은 한마리의 거대한 잠룡처럼 보이기도 한다. 멀리 적진에서는 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을 향해 오르고, 살을 에는 북풍이 철갑의 틈으로 스며든다. 쓸쓸한 웅혼(雄魂). 지금 이창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천천히 손을 놀려 흑8을 내려놓는다. 이 싸움은 이 바둑의 마지막 전장이 될 것이다. 여기서 밀리면 더 이상 해볼 곳이 없다. 검을 거꾸로 쥐고 물러설 수밖에 없다. 무사에게 퇴보(退步)를 밟는 일은 죽음보다 못하다.
백9로 붙였다. 기대기 수법. 적이 지닌 힘을 이용해 이쪽의 기운을 증강시키려 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마지막 전쟁이 시작됐다.
백은 흑 다섯점을 잡고 흑은 하변을 넘어간다. 백이 잡은 것이 꽤 커 보이지만 고작 열집에 불과하다. 오히려 꼬리처럼 보이는 흑은 몸통이 살아가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백●의 과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