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최원용 4단 vs 이창호 9단 )

○최원용 4단vs ● 이창호 9단 새 차를 주전자에 넣었다. 그리고 숙우 속에서 적당히 식힌 물을 부었다. 이 바둑을 복기하며 어느덧 두 주전자의 차를 비웠다. 이상한 바둑이다. 사람의 목을 마르게 만든다. 영혼이 말라가는 것만 같다. 여유는 이제 백의 어깨 위에 작은 새처럼 앉아 있다. 흑1로 끼워 붙였을 때 백은 〈복기1〉의 백1로 단수치는 것이 좋았다. 백5까지 된다 한들 백이 싸우는 데에는 하등의 지장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두었을까? 아낀 것이다. 나중에 언젠가 더 좋은 타이밍에 두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프로의 맹점이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라고. 나는 이렇게 첨언하고 싶다. ‘알고 있기에 못 보는 것도 세상에는 많더라’라고. 흑과 백이 9와 10으로 각각 빵따냄을 했다. 그러나 백으로서는 〈복기1〉의 그림을 외면한 만큼 이 빵따냄이 별로 위력적이지 못하다. 과연 흑11로 흑의 2차 공격이 시작됐다. 이래서는 ‘승부’다. 아직 바둑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흑15의 치중. 반상조차 숨을 죽이는 듯하다. 최원용의 굳은 얼굴이 가면처럼 딱딱해졌다. 이창호의 이마에도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과연 이 싸움의 결말은? 흑29가 결국 패착이 됐다. 최원용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백30을 놓았다. 32로 끊어 패를 거니 흑이 곤란해져 버렸다. 팻감이 없는 것이다. 흑29는 〈복기2〉의 1로 꼬부려야 했다. 백2에는 흑3으로 민다. 백을 잡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백도 살았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불확실한 미래. 지금으로서는 흑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인 것이다. 결국 제2기 한국물가정보배의 마지막 영웅무대에 설 두 마리 용은 이세돌과 최원용으로 낙착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고, 그러하기에 모두들 열렬히 환호했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우리 모두는 그 위대한 힘을 믿는다. 172수끝, 백 불계승. 〈김영삼 7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