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시작되는 순간! (이세돌 9단 VS 최원용 4단)

○이세돌 9단vs ● 최원용 4단 “김사범, 왔어요?” 노승권 부장이 먼저 알은 척을 해왔다. 대회 후원사인 사단법인 한국물가정보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대단한 바둑광이다. 게다가 대회 2년 만에 불쑥 바둑계의 마당발이 돼 버렸다. “그런데 바둑은 영 안 늘어” 하며 늘 엄살이지만…. 어깨가 벌어져 다부진 인상을 주는 그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뭔가에라도 쫓기는 듯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기원 사무국 3층 회의실에 앉아 바둑판 위에 의미도 없는 돌들을 두드리는 중이다. 그것은 자신의 불안정한 리듬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기 위해 주파수를 맞추는 작업, 그 이상의 행동은 아니었을 듯싶다. 오늘은 결승 1국이 벌어지는 날. 사실은 나도 약간의 긴장을 숨길 수 없다. 지난 5개월간 우리 모두는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오지 않았던가. 손을 델 듯 뜨거웠던, 그리고 지독했던 순간들이 흑백으로 처리된 영화의 엔딩 장면처럼 느리게 지나갔다. “누가 이길 것 같아?” 노부장이 눈길을 반상에 준 채 물었다. 물론 그 역시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지금 내게 간절한 구원요청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 대답은 단호할 수밖에 없다. “이세돌이겠죠.” 그가 돌 하나를 들어 귀의 1·1에 딱! 하고 내려놓았다. “그렇겠지?” 판을 쓸더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자고!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야.” 초반의 흐름은 돌고래의 피부처럼 매끄럽다. 흑15로는 〈복기1〉 1로 우상귀를 굳힐 수도 있다. 물론 백은 2부터 6까지 실리를 챙길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크다. 흑이 이후 공격을 어설프게 했다간 실리 부족으로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흑17은 보통이라면 〈복기2〉의 1로 벌리는 것이다. 백이 2로 귀에 뛰어들면 백10까지 흔히 보는 정석형태가 된다. 최원용은 이것을 재미없다고 본 것이다. 〈김영삼 7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