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다. 두말할 필요없이 한판의 대국에는 주연이 둘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날 바둑은 주인공이 3명으로 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창호 9단이 이 바둑의 TV해설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국자가 아닌 해설자로 그가 TV에 모습을 비춘 것은 거의 10년 만의 일.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90년대 초 모 방송기전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우승자는 반드시 출연해 자신의 바둑을 해설해야 한다’는 등의 강제조항이 계약에 들어 있었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바둑 해설자를 자청한 것은 이번이 첫 케이스라 해도 무방하다.
이창호의 해설자 ‘깜짝 변신’은 당시 언론의 화젯거리였다. 눈썰미가 있는 분들이라면 이 사건을 다룬 상당수의 기사들이 바둑이나 스포츠면이 아닌 연예면에 실렸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의 변신을 즐거워한 것은 비단 바둑팬들만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이날 방송을 본 사람들은 알 터이지만, 이창호의 해설 솜씨는 생각보다(?) 상당히 훌륭했다. 기존 바둑 해설자들 중 내심 뜨끔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전〉의 백2는 ‘나, 이세돌이야!’ 하는 수다. 이 장면에서 백이 둘 수 있는 최강의 강수일 것이다. 상식이라면 〈복기1〉의 백1로 한칸 뛰는 것이다. 이것이 책에 가장 많이 실려 있다. 그런데 흑2의 센터링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흑은 12까지 선수로 상변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놓고 흑14로 우상귀 굳히기. 흑에게 순조로운 이 그림을 이세돌이 좋아할 리 없다.
백10까지는 외길.
흑15로 〈복기2〉의 1을 젖히면 백은 2로 흑 두점을 잡는다. 흑도 3으로 잡아 바꿔치기. 그런데 이 교환은 백이 편해 보인다. 쌍방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고수답지 않은 행마가 한두 개가 아니다. 서로 멱살을 틀어쥐고 진흙탕을 뒹구는 모습이 시정잡배들의 싸움판을 보는 것 같다. 그만큼 두 사람은 힘을 다하고 있다. 때론 망가질 줄 알아야 좋은 연기자가 된다.
이창호의 해설자 ‘깜짝 변신’은 당시 언론의 화젯거리였다. 눈썰미가 있는 분들이라면 이 사건을 다룬 상당수의 기사들이 바둑이나 스포츠면이 아닌 연예면에 실렸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의 변신을 즐거워한 것은 비단 바둑팬들만이 아니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