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승부! (이세돌 9단 VS 최원용 4단)

○이세돌 9단vs ● 최원용 4단 무협영화처럼 쌍방의 돌들이 중앙을 붕붕 날아다니고 있다. 물론 와이어줄이 없는 실제 액션이다. 그런 만큼 까딱 잘못하면 대마의 목숨이 날아간다. 백2·4는 부분적으로 악수다. 하지만 노리는 바가 있었으니, 바로 6을 두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던 것이다. 6은 흑의 사혈(死穴)을 제대로 짚은 수. 이 한수에 흑 대마의 운명은 줄 끊어진 연처럼 너풀너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복기1〉의 흑1로 젖히는 것은? 보다시피 백8까지 흑이 끊겨 잡히게 된다. 그렇다고 〈복기2〉의 흑1은 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흑이 죽는 것이다. 그런데 이왕 죽을 바엔 흑이 1·3을 두어놓는 것이 뒷맛 관계상 좋았을 것이다. 흑이 죽었다고 판단되자 최원용은 흑7로 손을 돌렸다. 백12가 엄청나게 두터운 수. 완착처럼 보이지만 이런 곳을 값지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바둑이 채 100수가 되지 않았는데도 검토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바둑이 석양처럼 기울어진 것이다. 흑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바둑이 돼 버렸다. “좀 싱거운데?” 한국물가정보의 노승권 부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모니터로 눈길을 돌리며 빙긋 웃는다. 화면 속에서는 해설자 이창호의 모습이 보였다. 스트라이프 셔츠차림을 한 그는 별로 긴장돼 보이지 않았다. 노련한 한해원의 리드에 맞춰 부드럽게 스텝을 밟아 나간다. 결국 바둑이 끝났다. 118수만의 단명국이었다. 아무래도 중앙 흑대마가 죽은 것이 컸던 모양이다. 이후 흑은 단 한번도 힘을 써보지 못하고, 엉덩이를 씰룩이며 앞서 가는 백의 뒷모습을 촌구석 노총각처럼 쫓아가다 제풀에 지쳐 버리고 말았다. 대국자들보다 조금 늦게 스튜디오에서 나온 이창호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진담 두 스푼을 담은 농담 한잔을 건넸다. “그렇게 잘하면 어떡해. 우리 같은 사람들 뭐 먹고 살라고.” “무슨! 역시 해설은 내 체질이 아닌 것 같아. 대국하는 게 훨씬 편해.” 그의 대답을 듣고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모두는 어울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118수끝, 백 불계승. 〈김영삼 7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