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싫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바둑을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을 싸잡아 경시했다. 바둑을 권할 때면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바둑을 강요하는 것은,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바둑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거야.”

그러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인가 바둑을 배우더니 지금은 1급 언저리까지 늘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그저 밤이 가는 줄을 모른다. 그 친구의 줏대없음을 비웃을 마음은 조금도 없다. 왜냐고? 바둑은 관대하니까.

윤성현 선배와의 바둑은 사실 부담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기풍의 탓일 것이다. 윤성현 선배는 뼛속까지 철두철미한 실리 신봉자다. 초반에 한껏 집을 챙긴 뒤 종반 타개에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 타개력이란 것이 왕년의 조치훈 9단을 연상케 할 만큼 강하다. 이럴 때는 그나마 ‘한방'이 약인데 안타깝게도 나는 하드펀처가 아니다. 그런 것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