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눈을 들어 스승을 보았다.

반백의 머리, 그리고 더욱 짙어진 눈가의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스승께서도 많이 늙으셨군.

자신이 어릴 적에 스승은 한 자루 검으로 세상을 질타한 대영웅이었다. 그의 검 아래 고혼이 된 고수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세상이 검황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철이 들지 않은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부터 스승은 자신에게 있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상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도 여전히 나의 우상이십니다.'

흑1에 백2로 젖힌 것이 좋았다. 검황다운 혜안이 넘실거리는 수.

〈복기1〉의 백1로 늘기 쉽다. 그러나 흑도 2로 뻗는다. 이것은 흑이 괜찮다.

스승은 눈을 들어 제자를 보았다.
성큼 자라버린 제자. 그의 눈에서는 세상을 아우를 만한 정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많이 컸구나.'

자신의 뒤를 이어 천하를 움켜쥔 사람. 스스로 문파를 일으켜 천하제일문으로 일군 젊은 대종사. 그는 자신에게 있어 세상에 단 한명뿐인 제자이자 경쟁자였다.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여.'

우상에서 복잡한 변화가 펼쳐졌다.

세상은 스승을 검황이라 추앙했으나 자유로이 강호를 주유하던 시절, 그의 별호는 전신(戰神)'이었다. 그의 검법은 무림사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화려하면서도 날카로운 예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접근전만은 제자도 스승에게 반수 이상 양보를 해 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백10은 어쩔 수가 없는 일. 두점머리를 맞는 것이 싫어 〈복기2〉의 1로 늘면 흑이 4·6으로 넘어가는 수단이 남는다.”

스승이 쓴 입맛을 다셨다. 역시 제자는 강했던 것이다.

<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