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매미가 토할 듯 울어댔다. 여름이 깊어가고 있었다.

동자가 들어와 빈 주전자에 더운 물을 부었다. 제자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말년에 얻은 놈이다.”

“총기가 있어 보입니다. 올해 몇 살이냐?”

제자의 물음에 동자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열두 살이 되었습니다.”

눈앞에 앉은 사내는 운명이 석불이라 이름지은 천하의 대영웅이었다. 검황 이후 자신의 작은 가슴속에 품었던 단 하나의 이름. 그런 그가 지금 자신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보내오고 있었다.

“제자로 두실 마음이십니까?”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그러나 스승은 말없이 웃음을 보일 뿐이다.

스승은 사상 최강의 쾌검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신법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그의 신법을 두고 세인들은 ‘부드러운 바람'으로 칭하곤 했다.
부드러운 듯 민활한 신법. 그것을 바탕으로 한 쾌검을 막아낼 자는 적어도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제자 석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백1이 좋지 않았다. 〈복기1〉의 백1로 두어 흑2와 교환한 뒤 갔어야 했다. 실전은 그 탓에 흑2를 얻어맞고 말았다.

이왕 당한 것, 아예 〈복기2〉의 백1로 큰 자리를 차지하면 안되는 것일까? 스승이 머리를 저었다.

“아니 될 일. 기세가 과하면 만용이 된다. 흑2·4를 당하게 되면 백의 삶 자체를 장담할 수 없게 돼 버리지.”

백7이 젊은 시절 그의 신법을 보는 듯한 멋들어진 행마. 뒤이어 어깨가 한차례 흔들리는가 싶더니 백9와 11을 연달아 밟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검황의 행마. 그러나 제자는 묵묵히 그의 뒤를 따른다. 느리지만 단단하다. 그 때문인지 스승의 행마는 화려할 뿐 그다지 실익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