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이제 장가를 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

스승이 빙그레 웃었다. 제자의 목덜미가 붉어졌다.

“승부사에게도 사랑은 필요한 법이지. 아니 승부사일수록 더욱 필요하다고 해야 하나. 네 사모도 네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제자가 백1을 올려놓았다. 입이 아닌 손으로 대답을 해 보인 것인가. 스승이 물끄러미 백1을 보았다. 자신이 둔 수였다.

“묘수였습니다.”

스승이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 자신의 물음에 제자는 충실히 대답을 한 것이었다. 그렇지. 묘수가 있을 것이다.

흑이 4로 늘었다. 〈복기1〉의 흑1로 백 한점을 따내면 어떻게 되나? 백은 2로 단수치고 4로 연결한다. 결국 백14 정도로 넉넉하게 그물을 쳐 두게 되면 흑 전체가 위험해지는 것이다.

두어갈수록 중앙 방면의 백은 두터워지고 퇴로가 끊긴 흑 두점은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

흑10은 버틴 수. 〈복기2〉의 흑1로 늘고 싶지만 역시 백10의 포위망을 뚫을 자신이 없다.

‘호흡이 곤란해지지.'

한 줄기 차가운 땀이 목덜미를 스쳤다. 제자는 곁에 놓인 수건을 들어 얼굴을 닦았다. 그는 늘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었다.

백11로 미니 다음은 일사천리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흑16까지의 돌이 순식간에 놓인다. 그리고 백17.

검황의 한수!

제자의 눈이 축축해졌다. 이 한수에는 참으로 많은 것이 담겨 있지 않은가. 빠름과 느림, 화려, 변화, 효율, 그리고 인내.

‘이것은… 스승이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제자는 반면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