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2에 흑3이 실수. 복기 때 이세돌이 자책을 하더군요.

“내가 정신이 없어, 정신이 없어.”

무슨 얘기일까요? <복기1>이 정답입니다. 흑1로 밀었어야지요. 이 두터운 한 수에 백△는 사신을 만난 듯 떨게 됩니다. 움직이긴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일수록 무거워집니다. 사방의 흑은 철벽 그 자체지요. 좌상의 패자는 누가 뭐라 해도 흑이니까요.

그런데 운명은 최원용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세돌의 정신을 혼란하게 만들었듯 최원용의 손끝을 어지럽히고 말았습니다.

백4. 거의 패착이라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복기2> 1 정도로 중앙을 향해 뛰어 오를 절호의 기회였지요. 이 수였다면 흑▲의 실수를 확실하게 응징할 수 있었습니다.

실전은 백4로 뛰는 바람에 흑5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 흑3은 완착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절한 위치에 놓인 돌이 되었습니다.

백이 6으로 붙이고 8로 뛰며 몸부림을 치지만 그럴수록 백은 답답해지고 있습니다. 흑의 압박에 숨이 막혀 옵니다. 그렇다고 심하게 반발할 수도 없는 노릇. 사방의 흑이 워낙 두터워 자칫하다간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됩니다.

백을 거세게 몰아붙이는 동안 흑은 우상 방면에 원대한 꿈을 심어 놓고 있습니다. 이곳이 고스란히 흑의 집이 된다면 바둑은 끝. 백의 고심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바둑은 171수만에 이세돌의 불계승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지요. 최원용으로선 초반의 유리한 형세를 지키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패인의 이면에는 낙관이란 놈이 얄미운 미소를 띤 채 도사리고 있었지요.

1년 만의 재회는 이렇게 해서 또 다시 이세돌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최원용이 꾼 한 여름 밤의 꿈. 그것은 또 한 번의 악몽이었습니다.

<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