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눈매를 가진 홍성지. 눈꼬리가 살짝 볼을 향하고 있는데, 미간이 넓은 편이라 더욱 부드러운 인상을 하고 있다.

실제 성격도 온순하기 그지없다. 사실 승부의 일상을 뜯어먹고 살아야 하는 프로기사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미덕인지도 모른다. 때때로 그는 반상에서조차 부드러운 질감을 보여준다.

홍성지는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재학 중. 프로기사로서는 동년배나 후배들이 아닌 누나뻘 기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누나들이 보기에 하나쯤 두어보고 싶은, 이른바 ‘국민 남동생'의 상이었나 보다. 대학 캠퍼스에서도 그런 반응을 얻고 있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백8이 참으로 좋은 자리. 흑이 받기가 애매하다. <복기1> 흑1로 느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백은 리듬을 얻어 2로 시원하게 중앙을 향해 뛰어나갈 수 있다. 이건 백이 잘 풀린 결과. 따라서 이 흑1은 완착이다.

고민 끝에 최철한이 흑9를 선택했다. 이건 백으로 하여금 귀를 어떻게든 받아달라는 뜻이다. 그런데 백이 12로 꽂아 넣었다. 기막힌 수. 이게 이 바둑의 승착이 되었다.

흑13에는 백14로 도강한다.

<복기2> 흑1 쪽으로 단수를 쳐도 소용없다. 백은 역시 2 · 4로 건너가고 만다. 백12를 당하는 순간 이 바둑은 흑이 괴로워지고 말았다.

최철한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그는 얼굴에 많은 것을 드러내는 편이다. 중반 이후에 들어서면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다. 한 수 한 수 힘겹게 두어 간다. 그런데 그 수들이 대부분 상대의 가슴에 서늘한 칼날을 들이대는 독수들이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의 표정은 계산되지 않은 엄살에 가깝다.

바둑의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최철한의 얼굴에 고통의 그늘이 스쳐간다.

<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