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흑1이 좋은 수라고 했었다. 왜 이게 좋은 수인가?

<복기1>을 보면 의문이 해소된다. 일단 백이 1로 단수를 친다면?
흑은 쌍수를 번쩍 들고 환호할 일이다. 흑2로 잇고 4 · 6으로 꽉꽉 죄어버린다. 흑은 그야말로 철의 벽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것은 백이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백도2 · 4 · 6으로 두었다.

좌변 전투에서 승리한 흑은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

흑7로 <복기2> 1을 잇는 것은 바보다. 백2 · 4에 의해 흑 석 점이 환격으로 떨어지고 만다.

홍성지의 손끝에 영 힘이 들어가지 못한다. 사실 이 바둑은 끝났다. 좌변에서 단 한 번 패한 싸움으로 인해 더 이상 어떻게 해보기 어려운 바둑이 되고 말았다. 이쯤되면 분노를 넘어 슬픔이 가슴을 축축히 적신다.

흑11은 이영구의 승리 선언이다. 백12에 흑13 역시 이겼다는 얘기. 백14로 뛰니 흑15로 아예 상대의 마음을 갈가리 찢는다. 잇단 세 수가 한결같이 하이톤으로 외치고 있지 않은가.

“이겼습니다.”

이영구의 오만이 아니다. 형세를 보자. 좌상 백집이 스무 집 언저리. 그러나 흑은 암벽 등반가도 오르기 힘들만한 철벽을 쌓았다. 게다가 군데군데 흑집이 상당하다.

프로의 눈으로 보면 이 바둑은 이미 끝이 났다.

결국 161수 만에 홍성지가 항서를 써 내밀었다. 아플 것이다.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동안 그는 그야말로 숱한 고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러나 이윽고 미소를 보인다. 선한 눈매에도 총기가 되살아났다. 그리고 이영구와 복기를 시작했다. 반상에서 얻은 아픔은 반상에서 잊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번 대회 결승전에는 이영구가 선착했다. 이 바둑을 보며 4강전을 앞둔 조훈현, 그리고 이세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