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한 판. 운명이 남겨 놓은 한 조각 결승행 파이를 위한 마지막 매치.

그 무대에 걸맞은 거인들이 올랐다. 조훈현 , 그리고 이세돌.

세대를 대표하는 무신(武神)들이 결승으로 가는 최후의 경계에서 눈빛을 마주했다.

하얀 스튜디오의 빛무리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섰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이윽고 부조종실의 PD가 신호를 보낸다. 계시원의 입이 떨어졌다.

"대국을 시작하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납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있다. 산전과 수전을 겪을 대로 겪은 두 사람에게도 이런 시간은 타들어가는 성냥처럼 가슴을 갉아먹는 것이다. 돌을 가리니 이세돌이 흑. 가만히, 그러나 무겁게 흑 한 점이 우상귀 화점에 놓인다.

예상 외로 초반의 흐름은 물처럼 자연스럽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의식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의식적으로 급류를 피하고 있다.

흑3은 필요하다. 만약 손을 뺀다면 백은 당장 눈목자의 엷음을 찔러올 것이다.

<복기1> 백1이 급소. 쉽게 흑12까지만 된다고 해도 백은 간단히 흑진에서 수를 낼 수가 있다.

조훈현이 백4로 붙여 왔다. 슬슬 시작해 볼까? 하는 듯한 붙임. 이세돌의 눈이 파충류의 그것처럼 번들거린다. 전신(戰神)의 '신호'에 전투본능이 곤두서고 있다.

백4의 의도는 <복기2> 흑1 식으로 받아달라는 얘기이다. 백은 2로 하나 젖히고 4로 벌려 안정한다. 백의 생각은 어차피 흑▲가 놓인 이상 좌상귀는 흑집으로 굳혀줘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생각을 훤히 꿰뚫기에 흑은 흑5로 딴전을 피웠다. 백이 6 · 8로 흑을 두 번이나 세워준 것은 돌의 비효율을 노린 것. 일립이전 해야 할 흑돌이 중복의 모양을 하고 있다.

<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