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스스로 집중력이 많이 흐려졌다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방향감각에 문제가 있다. 전에는 ‘이쪽이다’ 싶으면 거의 맞았는데, 지금은 50% 정도다. 대국에 임하는 태도, 마음가짐, 생활의 변화 등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사실 성적과 집중력은 맞물려 있다. 성적이 좋으면 자연히 집중력도 좋아진다. 올해 성적이 별로였다. 기세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겸양하고 있으나 이세돌은 이 한판의 바둑에서 자신의 진가를 교과서처럼 완벽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반면 최원용은 태산 같은 격랑 위에 놓인 작은 돛배에 불과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실전〉 백1을 놓는 그의 마음은 한풍에 닿은 맨 살갗처럼 쓰리다. 본래는 〈복기1〉의 백1로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끊을 수 없다. 흑10까지 흑은 백을 우형으로 조롱하며 이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백5에서 최원용의 복잡한 심경이 읽힌다. 이 수는 6 자리로 단수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흑의 천라지망을 뚫기 위한 백의 사투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뜻밖에도 최원용의 얼굴은 무덤덤해 보인다. 자신을 비우고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 공간을 만들고 있다. 우주를 담을 수 있을 만큼 큰 공간. 그러나 그토록 어마어마한 공간이라도 패배의 아픔을 담기엔 결코 넉넉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산책이라도 하듯 뚜벅뚜벅 반상을 걷는다. 이세돌과의 동행인 것이다. 패배의 과정은 성장을 위한 최고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세돌의 뒤를 따라 걷고 있다. ‘앞선 이의 등이 굉장히 넓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흑20은 정수다. 보기 흉한 욕심을 내 〈복기2〉의 1로 끊는 것은 유치하기 그지없다. 흑이 대망하게 된다. 대망(大望)이 아닌 대망(大亡)이다(〈복기1〉의 백9는 흑●의 자리).
스스로 겸양하고 있으나 이세돌은 이 한판의 바둑에서 자신의 진가를 교과서처럼 완벽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반면 최원용은 태산 같은 격랑 위에 놓인 작은 돛배에 불과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