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혁과 최철한.

예선의 판을 깔아주기엔 미안한 판이다. 본선에서 봐야 할 대국을 미리 보게 생겼다. 이런 의외성은 토너먼트 방식의 약이자 독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 세상은 우리들의 생각보다는 꽤 균형을 이루며 돌아간다.

이 바둑은 참으로 독특한 한 판이었다. 두 사람은 세대를 대표하는 싸움꾼. 이런 경우 대개 후배는 처음부터 무작정 힘으로 선배를 밀어붙이려 하고, 선배는 경험이 우려난 노련함으로 슬쩍슬쩍 치고 빠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하지만 이 바둑은 통상의 궤를 완벽히 벗어났다. 후배의 힘에 선배는 더욱 강한 힘으로 맞섰다. 무지막지한 힘의 대결. 거친 함성이 평원을 울리고, 전사들의 몸은 근육과 힘줄이 불끈불끈 돋는다. 영화 300의 전투신이 고스란히 반상으로 옮겨졌다. 전형적인 남자들의 마초의 바둑이다.

백4와 6, 그리고 8이 최철한다운 적극적인 수법이다. 초반부터 기세를 쥐고 싶다. 유창혁의 눈빛이 시퍼렇게 빛을 발한다. 과거 저 눈빛에 오금을 못핀 상대가 어디 한둘이던가.

흑9로는 <복기1> 흑1로 씌워 7까지 처리하는 것이 보통의 수법이다. 백10의 밭전자 가르기는 최강의 대응. 유창혁이 힘을 쓰겠다고 선언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