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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악몽에 떠밀리듯 잠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절반의 의식을 붙든 채 냉장고의 불빛 앞에서 허겁지겁 찬물 한잔을 부어넣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나는 현실을 깨닫곤 한다.
현실은 내게 늘 냉엄했다. 그게 언제부터였던가. 아마도 바둑에 내 인생의 전반부를 묻기로 마음먹었던 때가 아니었던가. 차가운 물 한잔을 들고 내 방의 불을 켰다. 속을 얼려버릴 듯 찬물 한모금을 넘기고, 바둑판 앞에 앉았다.
백1로 뛰어들었다. 무슨 의미일까? 쉬운 수. 하지만 지금은 마치 안개 속에 가라앉은 섬처럼 모호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백3이 좋다. 멋진 맥점. 누가 두었어도 좋은 수일 것이다.
흑4로 차단하니 백5로 입구자. 묘수! 이런 수를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진다. 가만있자, 어제 마시던 술이 조금 남아 있던가?
〈복기1〉의 흑1로 단수를 치고 싶은가? 안된다.
실전 백3·5는 좌우 동형의 묘수. 실전의 대응이 최선이다.
흑8로 강렬하게 막아 갔다. 역시 최선.
〈복기2〉의 흑1로 이으면 쉬워 보이지만 백2로 사선을 넘는다. 이것으로 백은 살아있다. 그 사실이 흑의 가슴을 갈가리 찢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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