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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이 1로 젖히니 백은 2로 끼웠다.
당연해 보이는 백4. 이것이 결국 이세돌에게 단 한 번의, 그러나 결정적인 기회를 내주고 말았다. 패착이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노장의 투혼이 부러지고 말았다.
이세돌의 흔들리던 눈빛이 돌연 침착해졌다. 중수(重水)같은 침묵이 스튜디오 안을 답답하게 메웠다. 두 사람 모두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수를 읽는다. 수는 여명 속의 푸르스름한 새벽처럼 서서히 밝아져온다. 마침내 그것은 실체를 드러내었다.
흑5부터 드라마가 펼쳐졌다. 백은 피할 수 없다. 이미 각본은 손 댈 구석이 없을 만큼 단단히 짜여져 있는 것이다. 삼각의 사랑 구도는 끝나고, 이제 주인공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을 도리밖에 없다.
흑17까지 결국 수가 났다. 모든 것은 백4의 죄과였다. <복기1>을 보자.
백1로 늘어두어야 했다. 실전과 똑같이 된다고 볼 때.
<복기2> 백15까지 수상전은 백이 여유있게 빠르다. 이것이었다면 흑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기회는 무산이 되었을 것이오, 각본은 불치의 병에 걸린 주인공이 한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삶을 되찾게 되고, 결국 아름다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어졌을 것이다.
아쉬운 듯, 그러나 밝은 얼굴로 조훈현이 돌을 던졌다. 오히려 미안한 쪽은 이세돌이다. 뒤통수를 긁적이며 머리를 숙여보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