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의 손길이 빨라지고 있었다. 초읽기란 이름의 마신(魔神)이 두 사람의 등을 거칠게 떼밀고 있다.

"초읽기에 몰릴 때면 어떤 기분이 들어?"

그녀가 동그란 눈으로 물었다.

"글쎄 … 아무 생각이 안 나."

"아무래도 긴장이 많이 되겠지?"

"정말이야. 아무 생각이 안 나. 아무런 생각도."

초읽기에 몰린 상황에서 우리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수를 읽는다는 데 대한 부담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판단과 선택의 문제였다. 적게는 둘, 많게는 수십 개 갈림길의 입구에 선 기분. 등 뒤로는 악몽처럼 추적자의 거친 호흡이 점점 커져오고.

'그건 취향이나 기호의 문제가 아니야.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지.'

그녀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맥주를 마셨다.

흑3에 백이 4로 호구치자 일순 이영구가 당황했다. <복기1> 백1로 잇는 것만 봐 두었던 것이다. 이어만 준다면 흑이 좋다. 귀의 수상전은 백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실수지만 형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이른바 '이영구 대세론'이 전 판을 휘감고 있는 것이다.

흑9로 안전하게 연결해 두었다. 국후 이세돌은 <복기2>를 놓아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흑1로 나가면 백은 2로 흑 두 점을 잡겠지. 하지만 이렇게 두어도 백이 이기는 길은 없어. 이 바둑은 어차피 흑이 좋아."

이세돌의 손길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이 판은 내주어도 남은 두 판이 남아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역사 이래로 '번기'는 강자의 편이었다. 이영구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꼭 이겨야 한다고 마음을 죄고 있을 것이었다.
이세돌이란 사람, 실수를 두 번 할 사람이 아니다.

<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